정치에서 감정은 왜 중요한가, 정치와 정치적 참여는 이성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감정은 정치 행위의 기초적 동기이며, 정당성 판단, 소속감, 동원과 저항의 정서적 기반이다. 최근 정치심리학과 문화이론에서 주목받는 '감정 정치(emotional politics)' 혹은 '감정의 정치학(politics of emotion)'은 감정을 단순한 사적 경험이나 일시적인 정서 모드로 보지 않고, 권력의 흐름과 사회적 위계를 형성하는 근본적 작동 방식으로 본다. Sara Ahmed는 감정이 특정한 대상, 집단, 상징에 반복적으로 부착됨으로써 사회적 경계를 형성하고 권력 질서를 강화하거나 도전한다고 본다. 2024년 겨울로부터 2025년 봄에 이르는 한국의 탄핵 정국은 단지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분노와 두려움, 정의감과 혐오, 연민과 냉소가 불꽃처럼 타올랐던 시간이었다. 이 강렬한 감정의 구도 속에서 대다수 시민은 공감과 연대, 책임을 선택했고, 그보다 적은 또 다른 시민은 증오와 분열, 폭력을 택했다.
1. 혐오 기반 정치의 구조와 전략
탄핵 반대 진영 중 일부는 혐오와 공포를 중심으로 감정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공포, 음모론, 상실감, 배제 정서를 결합하여 ‘감정 동원’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핵심 전략은 다음과 같다:
- 기저 정서 구성: 국가 정체성의 상실, 좌익 세력의 국가 전복 음모, 외세 개입 등의 서사를 통해 위기의식과 박탈감을 증폭시킴
- 혐오와 증오의 정당화: 여성, 청년, 진보 정치인, 사법부 등에 대한 표적 혐오로 분노의 방향 설정
- 감정의 과잉 연출: 국수주의 상징물, 확성기 시위, 선정적 플래카드 등을 통한 감정 과잉의 시청각 전략
이는 감정의 외부화와 투사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상실감을 외부의 타자(이주민, 여성, 진보 언론 및 정당 등)에게 전가하고, 위계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반동적 감정 구조다. 이는 ‘도덕적 정서’라기보다는 ‘공포 기반 정서 체계’이며, 민주주의의 공감 기반 감정 질서를 파괴한다.
2. 시민 감정 민주주의의 실천과 의미
탄핵 찬성 시민들은 정의감, 도덕적 분노, 연민, 책임감 등 ‘도덕적 정서(moral emotions)’를 중심으로 감정을 조직했다. 이들은 사법 시스템의 붕괴와 헌정 질서 훼손을 개인의 정치 성향이 아닌 공공 윤리의 문제로 인식했고, 자발적 연대를 선택했다.
- 표현 방식: ‘키세스 단’, LED 응원봉, 개성 넘치는 깃발 등은 창의적이고 평화적인 정서적 실천이었다.
- 감정의 윤리화: 분노를 증오가 아닌 책임감으로 전환하여, 감정 자체를 공론화하고 정치적 실천으로 연결함.
- 정서적 공존과 상상력: 다양한 시민이 각자의 감정을 인정받는 ‘감정의 공공장’을 만들어내며 민주주의의 감정 토대를 확장함.
이러한 시민 감정은 감정 표현을 통제하려는 기성 권력의 기대와 달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정당화하는 핵심 정서로 작동했다.
3. 두 감정 구조의 비교와 민주주의의 감정 재구성
항목 | 정서적 혐오 기반 정치 | 정서적 공감 기반 정치 |
---|---|---|
기저 정서 | 위기감, 불안/공포 | 위기감, 불안/공포 |
핵심 정서 | 박탈감, 증오, 혐오 | 도덕적 분노, 연민, 공감 |
감정 매개 | 음모론, 도덕 발달 특성, 국수주의 | 책임감, 도덕 발달 특성, 보편적 가치 |
표현 양식 | 공격적 구호, 폭력 위협, 사법부 공격 | 평화 시위, 상상력과 예술적 승화, 해학과 집단 창의성 |
정서 방향성 | 외부로 투사(projection), 분열, 배제 | 내면화, 공공화, 연대 |
지향 구조 | 질서 회귀, 권위주의 회복 | 공동체 회복, 민주주의 확장 |
이 대조는 감정이 단순한 사적 반응이 아니라, 정치적 질서를 지탱하거나 전복하는 핵심 구조임을 보여준다. 특히 두 감정 구조 모두 기저 정서로서 '위기감'과 '불안(공포)'을 공유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 공통의 불안이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누구를 향해 조직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정치적 감정 구조가 형성된다.
전자는 그것을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으로 외재화하는 반면, 후자는 그것을 공동체적 책임과 연대의 감정으로 내면화하고 공공화한다. 이처럼 동일한 불안도 감정 정치의 지향성과 해석 틀에 따라 전혀 다른 민주주의적 함의를 낳는다. 감정이 양극단으로 분열되는 현상은 단순히 정치적 이념 차이로 환원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의식, 도덕 발달 특성,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인권 감수성, 공감 능력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이 감정 형성과 표현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Kohlberg의 도덕 발달 이론에 따르면, 사회 계약적 법률 준수 단계와 보편적 윤리 원칙 단계에 위치한 사람일수록 보편적 권리와 정의의 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 전체의 도덕적 질서를 고려하며 행동한다. 반면, 도구적 상대주의나 착한 아이 지향 단계에 위치할 수록 관계 중심적 동조나 내집단 규범에 의존하며, 감정 반응 역시 자기 초점적이고 내 집단 정체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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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Ahmed, S. (2014).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versity Press.
- Haidt, J. (2012). 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Pantheon.
- Hochschild, A. R. (2016). Strangers in Their Own Land: Anger and Mourning on the American Right. New Press.
- Kim, H. J. (2023). 감정과 민주주의. 창비.
- Park, Y. S., & Kim, H. J. (2024). 감정 정치와 혐오 동원. 한국정치심리학회지, 41(2), 101–128.
블로그에 게재한 모든 글은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된 글이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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