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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2024년과 이듬해 봄까지, 시민 감정의 기록

by Care Love 202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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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한국 사회는 다시금 정치적 격랑의 중심에 섰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정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를 뒤흔든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 법치의 훼손, 국가 시스템의 마비, 상식과 윤리의 붕괴, 갈등과 혼란의 폭력적 분출이라는 점에서 단지 헌정 질서의 위기를 넘어선, 실로 재앙에 가까운 총체적 위기였다. 시민들은 분노, 공포, 좌절의 감정을 단순한 정치적 판단에 따른 반응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존적 생존의 위기로 경험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형형색색의 불빛과 해학이 넘치는 깃발 아래 광장으로 모아졌고, 남태령 대첩, 키세스단 등 연대와 평화적 표현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직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 감정으로 보는 탄핵 정국 – 공포, 불신, 불안의 정동 정치

지난겨울에 이어 2025년 4월 초까지 전개된 정치적 상황은 감정의 정치학(politics of emotion)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감정의 정치학이란 감정이 단순한 사적 반응이 아니라,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거나 저항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효과를 가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라 아메드(Sara Ahmed)에 따르면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제도 사이의 거리를 배치하고 위계를 재구성하는 정동적 장치이며, 사회가 어떤 감정을 중심으로 조직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감정 인프라가 달라진다. 공포와 불신이 중심에 놓일 경우 권위주의와 분열의 정치가 강화되고, 공감과 연대가 주가 되면 포용적 민주주의가 촉진된다.

 

시민 다수는 제도의 정상적 작동을 기대했으나, 검찰권의 선택적 행사, 헌법재판소의 침묵, 계엄 검토 문건의 존재 등은 깊은 심리적 충격을 안겼다. 이는 단순한 ‘정치 불신’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감정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종의 ‘감정 쿠데타’로 읽을 수 있다. 무력감과 불안, 절망감은 공적 참여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으나, 이번 사태에서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감정적 결집을 낳았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자발적 거리행동과 SNS 기반 감정 공유는, 공포를 넘어서 연대와 주체화로 나아가는 감정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 극우 감정 정치의 감정 조작과 증오 동원

탄핵 정국에서 극우 세력은 여론 왜곡, 허위정보 유포, ‘법치’와 ‘애국’의 감정적 재정의 등을 통해 시민 감정을 조직하고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조작된 뉴스, 법원과 헌재에 대한 위협, 여성·청년·야당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 감정적 폭력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감정 동원의 핵심은 ‘분노의 재구성’에 있다. 즉, 고통의 원인을 권력자에게 돌리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나 이질적인 타자 집단에게 투사함으로써 분노를 외부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혐오 정치의 정서적 기반이자, 감정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심리 구조다.

3. 감정의 전환과 시민의 감정 주권 회복

탄핵 정국은 시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감정 주권(emotional sovereignty)을 되찾는 계기이기도 했다. ‘키세스 단’, ‘LED 응원봉 시위’, '기발한 구호의 깃발'들은 집단적 감정 표현의 창의적 실천이자, 감정 회복력의 상징적 장치였다. 이러한 표현은 정치 참여를 폭력과 구호, 대결 구도만이 아니라, 유머와 상상력, 정서적 연결로 재구성하는 감정 정치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회복이 단지 제도의 복구뿐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연결된 감정 질서의 회복임을 시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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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주의의 재정립 – 감정 없는 이성에서 도덕적 감정 있는 공공성으로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이성 중심’, ‘사실 중심’, ‘절차 중심’의 공론장 모델에 기대어왔다. 감정은 더 이상 정치의 부작용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조건이다. 특히 이번 탄핵 정국에서 확인된 시민의 분노, 슬픔, 불안, 연대는 단순한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도덕적 정서(moral emotions)'로 이해될 수 있다. 심리학자 Jonathan Haidt는 공감, 감사, 분노, 수치심, 연민, 도덕적 자긍심, 존경 등이 도덕 판단과 행동을 유도하는 핵심 정서라고 설명한다.

시민들은 헌정 질서, 법치와 상식의 붕괴, 권력의 남용을 마주하며 놀람과 분노라는 감정적 경험에서 더 나아가 양심과 도덕적 붕괴를 감지했고, 이는 곧 연대와 참여의 형태로 이어졌다. 감정은 공적 언어로 전환되며 창의적이고 평화적인 시위 형식으로 형상화되었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제도의 복원뿐 아니라 감정 질서의 윤리적 재구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감정의 공공성'을 재정의하고, 민주주의를 그 이념과 가치, 제도의 발전뿐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여 정서적으로도 조화롭고 지속 가능한 체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참고 문헌 

  • Ahmed, S. (2014).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versity Press.
  • Cvetkovich, A. (2003). An Archive of Feelings: Trauma, Sexuality, and Lesbian Public Cultures. Duke University Press.
  • Hochschild, A. R. (1983). The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Park, Y. S., & Kim, H. J. (2024). Emotion, democracy, and protest: The psychological aftermath of South Korea’s impeachment crisis. Korean Journal of Political Psychology, 41(1), 55–78.

 

블로그에 게재한 모든 글은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된 글이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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