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치와 감정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구조적 관계에 있다. 그 중심에는 미디어, 특히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다. 시민의 감정은 더 이상 일방향적으로 수용되는 대상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생성되고, 조직되며, 소비되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감정의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양극화, 혐오 조장, 정서적 과잉 상태를 야기하며, 심리적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미디어 환경을 재구성하고, 알고리즘 너머의 진정한 공적 소통의 조건을 모색해야 한다.
1. 감정은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정치화되는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감정은 정보 소비의 필터이자 생산의 동력으로 기능한다. 분노, 공포, 불안, 혐오와 같은 고강도 감정은 클릭률을 높이고 알고리즘 상위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그 결과, 시민은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무엇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가’를 기준으로 정보를 수용하게 되며, 이는 사회적 공감대를 해치는 정서적 단절과 정치적 왜곡으로 이어진다. 근거가 없거나 부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유튜브와 포털 중심의 감정 과잉형 정치 콘텐츠는 정치 불신과 정서적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주요 경로로 작동할 수 있다. 정보보다 감정이, 근거보다 프레임이 우선시 되는 환경 속에서 시민은 공론장의 해체와 소통의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2. 알고리즘은 감정의 왜곡 장치인가?
플랫폼 기반 알고리즘은 시민의 감정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을 선별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클릭 수, 체류 시간, 반응량에 따라 자동 추천되는 콘텐츠는 감정적 극단성과 확증편향을 강화하며, 시민을 점점 더 폐쇄적인 정서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이러한 감정적 필터 버블은 감정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이다. 공적 공간에서 다양한 감정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표현하고 듣는 경험이 제한되며, 시민들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협상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이로 인해 미디어는 감정을 매개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기보다,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3. 미디어 리터러시를 넘어서야 할 것들
기존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정보의 진위 파악과 비판적 사고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감정적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가 함께 요구된다.
감정 리터러시는 시민이 콘텐츠 소비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 반응을 자각하고, 그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성찰하며, 그것이 정치적 판단이나 사회적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감정적 리터러시는 세 가지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첫째, 자기감정 인식(self-awareness) 능력이다. 시민이 특정 콘텐츠를 접했을 때 왜 분노하거나 불안을 느끼는지, 어떤 프레임이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감정의 출처와 맥락에 대한 분석력이다. 감정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유도된 것일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셋째,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공감 능력이다.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타자의 정서를 판단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감정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감정 리터러시는 단지 감정을 통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자기 성찰(self-reflexivity)과 정서적 공존(emotional coexistence)을 위한 기반이다. 정서적 공존은 다양한 감정과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시민이 자기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이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을 수 있다고 느낄 때, 감정은 혐오나 갈등이 아닌 연대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정서적 공존이 정착된 공동체는 감정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 각 구성원이 자기감정만이 아니라 남의 감정도 소중히 여기고 책임지는 문화가 형성되면, 혐오와 분노의 극단적 표출을 억제하고 사회적 신뢰와 연대감이 증진된다. 궁극적으로 정서적 공존은 공동체의 정신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다양한 갈등을 폭력이나 증오로 치닫지 않고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정서적 공존은 감정 리터러시의 실천적 응용이자, 감정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필수 요소로서, 갈등을 상호 이해의 기회로 바꾸고 공동체를 더욱 포용적이고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4. 감정 민주주의를 위한 미디어 구조의 재구성
감정 민주주의란 단지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공적으로 인정되고, 존중되며,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는 구조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디어 구조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영미디어의 독립성과 신뢰도 강화, 알고리즘 설계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 커뮤니티 기반 감정 토론 플랫폼의 개발 등이 요구된다.
특히 시민이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감정의 정당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지털 공론장의 확장은, 감정이 혐오와 조작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에너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와 제도 설계, 시민 감정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결합되어야 가능한 과제다.
참고 문헌
- Papacharissi, Z. (2015). Affective Publics: Sentiment, Technology, and Politics. Oxford University Press.
- Gillespie, T. (2018). Custodians of the Internet: Platforms, content moderation, and the hidden decisions that shape social media. Yale University Press.
- Kim, H. Y., & Park, J. E. (2021). Algorithmic emotion: Polarization and emotional governance in Korean media. Korean Journal of Media Studies, 65(4), 87–115.
- Couldry, N., & Mejias, U. A. (2019). The Costs of Connection: How Data Is Colonizing Human Life and Appropriating It for Capitalism. Stan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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