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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느낌과 말의 힘 : 공감과 감정 회복력의 민주적 가치-Emotional Resilience

by Care Love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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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는 사회 갈등, 혐오 담론, 정치적 양극화는 단지 제도의 위기가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심리적 건강과 회복력(resilience)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심리적 회복력은 단지 개인의 성격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따라 강화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공공의 자산이다. 감정의 민주화와 감정 주권 회복이 필요조건이라면, 감정 회복력은 시민이 정치적 탈진과 감정적 과잉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 자본이다. 본 글에서는 감정 회복력의 의미와 사회적 기초, 그리고 시민 공동체의 복원력을 높이기 위한 조건들을 탐색한다.

 


1. 감정 회복력이란 무엇인가?

감정 회복력(emotional resilience)은 스트레스, 충격, 상실, 사회적 모욕 등의 부정적 정서 경험 후에도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회피나 무감각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내적 조절 능력과 외적 지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

정신분석, 발달심리학, 긍정심리학 등에서 공통적으로 감정 회복력은 자아강도(ego strength), 자기 조절(self-regulation), 의미화 능력, 감정표현 기술, 공감능력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소와 연결된다. 자아강도는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를 통합된 정체성으로 유지할 수 있는 내적 견고함이며, 자기 조절은 감정이나 충동을 적절하게 인식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의미화 능력은 부정적인 정서나 경험에 대해 그것의 의미를 성찰하고 서사화할 수 있는 힘을 말하며, 감정표현 기술은 자신의 감정을 적절한 언어로 타인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공감능력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대인 정서 능력으로,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사회적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 회복력은 어느 정도 선천적 기질이나 초기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이후의 사회적 경험, 교육, 지지 체계 등을 통해 충분히 학습되고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2. 회복력을 해치는 사회적 조건들

한국 사회에서 시민의 감정 회복력을 저해하는 대표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반복되는 정치 불신과 제도의 불투명성, (2) 과도한 경쟁 중심의 교육과 노동 구조, (3) 불평등과 혐오 담론의 일상화, (4)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5) 감정 표현에 대한 규제와 낙인. 이러한 조건은 시민으로 하여금 공적 문제를 사적 감정으로 내면화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감정에 책임을 묻도록 만든다. 그 결과는 감정적 탈진(emotional burnout), 자기혐오, 사회적 회피, 공동체 소외감 등으로 나타난다. 감정 회복력이 약화된 사회는 감정의 외재화를 폭력이나 냉소로 분출하거나, 반대로 무기력과 체념 속에 침잠하게 된다.

 

3. 감정 회복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기초

시민의 감정 회복력은 개인의 자기조절 훈련만으로는 강화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 균형 있게 갖추어질 때, 공동체 전체의 감정 복원력이 강화될 수 있다. 

안정적인 감정 표현 공간: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학교, 지역 커뮤니티, 공공미디어 등의 존재. 예를 들어, 핀란드의 유아교육에서는 아침 원(circle time)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고 또래와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영국 일부 초등학교는 ‘감정 코너’나 ‘마음 챙김 공간’을 교실에 설치해, 일상 속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여지를 마련하고 있다.

 

회복 서사의 공유: 트라우마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의 고립된 경험이 아닌,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공감되는 서사로 전환하는 문화. 예를 들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국가폭력과 집단적 상처에 대한 감정적 회복의 서사를 감정적으로 섬세하게 드러낸다. 또한 촛불혁명에 이어 지난 12월 계엄 이후 ‘빛의 혁명’이라 칭해지는 축제와 같은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는, 집단적 치유의 과정이자 민주주의와 감정 회복의 장이었다.

 

공감 기반 정치 담론: 정책과 미디어 담론이 공포나 혐오보다 공감과 이해를 중심으로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안 언론으로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매불쇼’ 등은 정치적 사안을 유머와 감정의 언어로 재해석함으로써 시민 감정의 탈진을 완화하고, 정치 참여를 일상적이고 친근한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정서 교육의 제도화: 감정 읽기, 표현, 조절을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전 생애에 걸쳐 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일리노이 주는 SEL(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을 정규 교육과정에 통합하여 정서 지능 향상과 감정 회복력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감정 코칭 중심의 ‘마음건강수업’을 도입하여 교실 단위의 정서 교육을 제도화하고 있다.

4. 감정 회복력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와 제도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서로 연결된 시민들 사이의 신뢰와 복원력에 기반한다. 감정 회복력이 높은 시민 공동체는 혐오와 분열에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갈등 이후에도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내적 근력을 갖는다. 이는 민주주의의 심리적 지속 가능성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분열과 탈진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제도의 수복과 함께 시민의 감정 회복력을 높이는 사회적 프로젝트다. 감정 회복력은 단지 개인의 성향이 아닌,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 Bonanno, G. A. (2004). Loss, trauma, and human resilience: Have we underestimated the human capacity to thrive after extremely aversive events? American Psychologist, 59(1), 20–28.
  • Fredrickson, B. L. (2009). Positivity: Groundbreaking research to release your inner optimist and thrive. Crown.
  • Park, Y. S., & Lee, H. J. (2023). Emotional resilience and political participation in South Korea: Psychological implications of polarization. Journal of Korean Social Psychology, 40(2), 77–104.
  • Siegel, D. J. (2012). The Developing Mind: How Relationships and the Brain Interact to Shape Who We Are. Guilfor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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