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는 정치적 양극화다. 이념적 차이, 세대 갈등, 지역 대립, 계층 분열 등이 정치 영역을 넘어 일상생활과 시민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혐오와 적대의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전략은 시민 사이에 불신과 분노를 조장하고,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사회 또한 예외가 아니며, 그 구조적 병리와 심리적 영향을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 정치적 양극화와 감정의 극단화
정치적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는 단지 의견 차이를 넘어, 상대 진영을 비도덕적·비정상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감정의 극단화(affective polarization)’ 현상으로 이어진다.
감정의 극단화란 타 집단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격화시키는 동시에, 자기 집단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강화하는 심리적 왜곡 상태를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는 사실이나 논리보다는 '누가 우리 편인가'에 따라 감정의 방향이 결정되며, 분노와 혐오, 불신과 공포가 정치적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된다.
시민들은 더 이상 타인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게 되며, 이는 사회적 유대를 약화시키고, 고립감과 불안을 심화시키며, 정신적 탈진(burnout)을 유발한다. 특히 SNS 공간에서는 이러한 감정의 극단화가 더욱 가속화되어, 일상적 대화와 관계마저 정치적 경계선으로 단절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 혐오 정치와 감정 조작
혐오 정치는 공포, 분노, 경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해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공격하는 전략이다.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특정 지역 또는 세대를 대상으로 한 혐오 담론은 물론,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에 대한 조롱과 비난 역시 주요한 혐오 정치의 형태다. 특히 최근에는 혐중(혐오적 반중국 감정), 반페미니즘,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한 왜곡된 공격 등이 정당화되며, 시민 사회의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혐오는 시민의 감정 구조를 왜곡하고, 일상의 대화마저 이념적으로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감정적 안정성과 공감 능력을 훼손하며, 심리적으로는 냉소, 혐오, 정서적 무감각 상태를 초래한다. 혐오의 반복 노출은 시민의 심리적 회복력을 약화시키고, 우울과 분노의 이중 굴레에 빠뜨릴 수 있다. 혐오의 반복 노출은 시민의 심리적 회복력을 약화시키고, 우울과 분노의 이중 굴레에 빠뜨릴 수 있다.
3. 미디어와 알고리즘의 증폭 효과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 기반 뉴스 유통 구조는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담론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클릭 수를 기반으로 한 추천 시스템은 이용자를 점점 더 극단적인 콘텐츠로 몰아가고, 확증편향을 강화하며, 분열된 정보 생태계를 구축한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시민의 판단력을 왜곡하고, 감정적 흥분을 조직화하는 도구로 악용된다.
특히 2024년 탄핵 정국에서는 특정 극우 유튜브 채널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가 급속히 유포되었으며, 일부 극우 정치 세력은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정면으로 공격하며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는 프레임을 사용했다. 이는 시민의 법적 안정감과 제도 신뢰를 훼손함과 동시에, 집단적 정서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 결과 시민들은 사실보다 감정에 반응하게 되며, 이는 집단적 정서 과잉 상태를 유발하고, 정치적 회피 또는 극단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높인다.
4. 분열된 사회의 심리적 비용
양극화되고 혐오에 물든 사회에서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심리적 경계 상태에 놓인다. 친구, 가족, 직장 동료와의 관계조차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단절되거나 위협받는 경험은 개인의 감정 안정성을 심각하게 해친다. 이는 사회적 불신과 정서적 고립을 초래하며, 장기적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상실, 정치에 대한 환멸, 그리고 사회 전반의 심리적 취약성(psychological fragility)으로 이어진다.
심리적 취약성이란 외부 자극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쉽게 무력감에 빠지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이는 회복력 저하, 스트레스 내성 감소, 타인에 대한 불신 증가, 감정 조절 능력의 약화 등으로 나타난다. 분열적 사회 구조는 이러한 취약성을 개인의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 유발한 결과로 확산시키며, 결국 전체 사회의 감정적 복원력(emotional resilience)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5. 치유의 조건 – 감정의 민주화와 공감의 정치
양극화와 혐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지 제도 개혁이나 정책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정의 민주화, 즉 다양한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필요하다.
감정의 민주화란 공적 영역에서 억압되거나 배제되었던 분노, 불안, 슬픔, 공포와 같은 감정을 정당하고 가치 있는 사회적 언어로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감정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정치 담론의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복귀해야 함을 뜻한다. 감정은 사회 문제에 대한 민감도, 제도에 대한 신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매개하는 핵심 경로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한 감정적 진실을 표현하며, 공적 의사결정에 이를 반영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온전하게 작동할 수 있다. 공감의 정치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공동체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정당, 미디어, 시민사회는 감정 조작이 아닌 감정 회복을 위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교육은 비판적 사고뿐 아니라 감정적 소통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 Mason, L. (2018). Uncivil Agreement: How Politics Became Our Ident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Iyengar, S., & Krupenkin, M. (2018). The strengthening of partisan affect. Political Psychology, 39(S1), 201–218.
- Sunstein, C. R. (2017). #Republic: Divided democracy in the age of social me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 Kim, H. Y., & Lee, J. W. (2022). Media polarization and affective division in South Korea. Korean Journal of Communication, 64(2), 7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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